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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공급

우리는 노동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이제는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상품의 공급자로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볼 시간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노동자가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그는 논리적이고 계산적이며 냉정'하게 행동하고 자신의 복지(또는 경제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만족이나 효용)를 극대화하려 한다.

 

 

노동의 공급

우선 왜 노동자가 임금을 요구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만일 그가 순수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일한다면 그는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노동을 고용주에게 선사할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않으며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적 용역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요구한다. 즐겁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면 노동자는 노동을 하면서 고통을 받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노동은 지루하고 힘들며 스트레스를 준다는 의미이고, 노동자는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경제학자에게

있어 노동은 그 자체가 선험적으로 어떤 효용이나 비효용을 초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노동자는 돈을 받으려고 한단말인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이다. 단지 그는 배가 고프고 집세도 내야 하고, 자식의 식비나 각종 세금, 교통비 등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학자에게 이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노동자는 당연히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효용을 제공해주는 소비에 끌리긴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여가(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을 말한다)를 추구하고 있다. 그 때문에 노동자는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떠안게 된다. 그것은 노동자가 소비와 여가를 동시에 원한다는 거의 딜레마와 같은 문제이다.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한다는 것은 여가를 희생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는 이러한 희생의 대가를 고용주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노동자는 소비의 효용과 여가의 효용 사이에서 조절을 한다. 그는 이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주어진 임금 수준에서 특정한 소비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동을 제공할 것이며, 이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의 여가를 유지할 것인지를 저울질하게 된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노동자가 내일 아침 노동시장에 나가면 시간당 7,000원을받을 수 있는 고용 제안을 기대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가격이라면 노동자는 하루에 몇 시간의 노동을 공급할 생각이 있는 것일까? 하룻밤 동안 노동자는 이 어려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와 함께 생각을 전개해보자. 그는 여가를 무척 좋아하지만 하루에 깨어 있는 16시간 동안 빈둥거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시간의 여가를 포기하고 한 시간의 노동을 통해 벌은 7,000원으로 소비를 할 수 있다면 이는 무척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여가를 포기하고 7,000원을 더 벌면 좋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세 번째, 네 번째 여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이미 네 시간의 노동, 즉 네 시간 동안의 여가를 희생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노동자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노동으로 벌은 28,000원이 제공하는 소비 수준이 소중한 여가를 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괴로움을 보상하고도 남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한 시간의 여가를 더 회생한다는 생각(이는 한 시간 더 노동을 한다는 의미이다)을 하게 되면 일종의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일곱 번째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는 6시간 동안 벌은 42,000원에 7,000원을 더함으로써 생기는 추가 효용이 포기한 이 한 시간의 여가를 더이상 완전히 보상해주지 못한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문제의 시간

하지만 노동자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확신이 서야만 한다. 한 시간이라도 더 노동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바보 같은짓인가? 그렇다면 문제의 이 한 시간은 일곱 번째인가, 여덟 번째인가, 아니면 아흡번째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가 상정한 노동자는 다음과 같은 원칙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노동자는 시간당 임금으로 살 수 있는 소비가 여가 한 시간의 추가 희생을 보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이상 계속 여가를 포기해야 한다. 즉 노동시간을 계속 공급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만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 소비(한 시간의 여가를 포기할 때 생기는)가 한 시간의 추가 노동이 가능케 하는 추가 소비보다 적을 경우 그는 한 시간 더 노동함으로써 만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추가 소비로 계속 만족도를 높이려 하기 때문에 그의 휴식시간은 줄어들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시간당 임금(이 임금은 불행히도 중가 하지 않는다)이 더 이상 이런 보상을 해주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노동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

확 하게 알고 있다. 이를 들이 7,000원에 8시간 일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정확히 8시간이지 더도 덜도 아니다. 주어진 임금 수준에서 노동시간 공급에 대한 노동자의 합리적 결정 과정은 이렇게 진행된다.

 

 

노동자의 임금 수준

하지만 밤하늘에는 아직 별이 떠 있고 우리의 노동자가 자려면 아직 멀었다. 내일 아침 노동시장에서 임금 수준이 시간당 7,000원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직 우리의 노동자는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임금 수준에 대해 이런 계산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이론적으로 그것은 0에서 무한대까지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 시장에서 제시될 수 있는 모든 임금 수준에 각각 몇 시간의 노동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적어놓은 수첩이나 도표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계산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이 작업이 끝난 다음에 우리의 노동자는 눈을 비벼댄다. 늦은 밤에 피곤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놓은 노동공급의 도표가 너무나 놀랍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가격(다양한 임금 수준)의 목록이 있고 다른 쪽에는 각각의 가격에 해당하는 노동시간의 공급이 적혀 있다. 여기서 그는 무엇을 발견할까? 놀랍게도 내일 노동시장의 임금이 높을수록 더 많은노동을 공급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2022.05.22 - [분류 전체보기] - 적극적이고 활기에 넘치나 자만을 조심해야 한다.

 

적극적이고 활기에 넘치나 자만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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