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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생에 사랑하심

예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 있으며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시고, 함께 음식을 잡수시고, 그들의 진을 방문하시고, 파티와 결혼식에도 참석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셨으며 사람들도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로서 사랑하시고 존중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셨다.

 

예수님 생에 사랑하심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께서 자기 생애를 사셨던 방법이 그 사실을 잘 나타내 준다.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어 주님과 함께 앉아서 함께 대화를 주고받으며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가르치셨을 때 귀를 기울였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기 때문에 반드시 상대에 대한 사랑과 민감성을 가지고 전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아셨다.바로 그것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접근하실 때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모든 모양에 딱 맞는 일정한 크기'곧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어떤 경우에나 맞는 일정한 전도 방식이란 있을 수 없다. 예수님께 있어서 개개인은 유일하게 창조된 존재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으시고 그들의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적용하셨다.

 

오늘날 기독교의 상태에 대한 한 가지 슬픈 이야기는 너무나도 자주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데 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유능한 증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을 중심 하여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첫째라는 점에 대해 의아해할지 모른다. 우리의 두려움은 자주 비성경적인 가치 판단으로부터 연유한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본질적으로 불신자보다 더선하며, 그래서 만일 자신이 죄인들 주위에서 지낸다면 그들의 죄악 된 삶의 방식이 자기를 어떻게 해서든 무너뜨릴 것이라고 잘못 믿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그렇지 않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가치 있으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이유로 인해 주어진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삶으로 보여 주신 메시지, 곧 하나님이 자기의 피조물들을 사랑하시고 존중하신다는 소식이다.

 

기도의 사람 예수님

예수님은 이웃을 향한 마음을 가지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전자에는 바로 후자가 따른다. 기도는 예수님이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에나 하셨던 선택 사항이 아니라 긴요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아침 일찍 일어나신 후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홀로 기도하셨다(막 1:35). 예수님께 기도란 이따금 행하시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생의 습관이었다. 그것은 마음과 정신적 자세, 곧 주님이 사셨던 공기(분위기 ; atmosphere)였다. 바로 그 공기를 예수님은 호흡하셨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모든 것은 기도로부터 나왔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적인 능력이 그분의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재 시간을 통하여 온다는 것을 아셨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지상에서 그분이 행하셨던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믿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이 되셨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빌 2:7)고 하셨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좋으로서 행하심으로써 아버지께 온전히 복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고 말씀하셨다.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셨다.

 

기도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향하여 갖고 계셨던 마음에서 우러나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자기가 개인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을 위해서 간구하셨을 때, 그 기도란 궁극적인 사랑의 행위였다. 우리는 이런 관점으로 기도를 이해하는 데 자주 실패한다. 성경이 그리스도인에게 기도하라고 명하고 있기 때문에 기도란 우리가 일정에 마땅히 집어넣어야 할 중요한 것이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우리의 일정에서 제일 먼저 그것도 자주 빼 버리는 항목이 바로 기도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간구와 중보 기도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때,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간구할 것이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자랄수록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 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원 또한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화신이셨던 예수님이 그의 아버지께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메시지 자체이신 예수님

여러 해 전에 나는 이스라엘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스라엘 전역을 집중적으로 여행했는데 특히 갈릴리 호수 주변지역을 즐겨 찾았다. 이 지역을 자주 방문하면서 나는 예수님의 역사적인 생애와 사역에 더욱 빠져들었다. 한편 거기에서 나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면서 복음서들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목격했을 때 빛이 났을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해 보았다. 또한 나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가르치셨을 때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였을 모습을 내 마음에 그려 보려고 애썼다.

 

지금도 나는 눈을 감고 그 지역을 기억해 낼 수 있는데, 그곳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때 이후로 나는 예수님의 사역에 관하여 묵상하고 깊이 생각해 왔다. 폐부를 관통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대단히 중요했지만, 사람들은 특별히 삶으로 입증된 예수님의 인품에 매력을 느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하시기 위해서 오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어떻게 그 메시지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분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만 하는 분이 아니셨다. 그분은 메시지 자체이셨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공적인 중인이 되려면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우리 자신이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 메시지대로 살고 그것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여 말한 바와 같다. 너 회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 3:3).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하여 읽을 수 있다. 너희는 모든 사람들이 읽도록 그리스도로부터 온 편지이다. 너희는 종이 위에 잉크로 쓰인 읽기 위한 편지나 혹은 학위 논문에서 발췌한 말처럼 듣기 위한 편지가 아니라 너희의 마음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행위들로 쓰여진 편지이다.

 

우리는 세상에 보내신 그리스도의 편지인가? 우리는 복음 메시지의 살아 있는 화신인가? 우리는 자신이 접촉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밝히 드러내며 투사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자신이 암송한 미리 포장된 복음을 제시하는 데더 관심이 있는가? 우리는 단지 메신저(전달자)에 불과한가? 아니면 우리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보고 따르는 메시지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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