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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정보

어떻게 지을 것인가

이때 샘물 줄기가 가까이에 있다면 도랑을 내어 물을 끌어오는 것이 좋지만, 물줄기가 먼 곳에 있는 경우에는 임홍林洪의 산가 청사에 나오는 대나무를 쪼개어서 샘물을 끌어오는 법. 두보가 대나무를 쪼개 샘물을 흐르게 한다 고 쓴 시가 바로 이것이다. 또 왕정의 농서에서도 죽통竹筒을죽 이어서 물을 끌어들인다라고 하였다. 보통 거처하는 곳이 수원水源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물을 길어 쓰기가 불편하다.

 

그러므로 큰 대나무를 취하여 대마디 속을 뚫어서 위아래가서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한다. 이것을 평지에 놓기도 하고, 혹은 계곡 위에 시렁을 얹어 걸치기도 하여 물을 끌어들여 연못이나 부엌, 욕실 둥에 물을 댄다. 약초밭이나 남새밭 같은 데도 이 물을 이용할 수 있으니, 두보의 대통을 연이어 작은 뜰에 물을 준다라고 한시가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끌어온 물이 뜰을 지나 담장을 뚫고서 흐르다가, 괴석을 만나서는 소리를 내며 부딪치고, 길게 파인 바위를 만나서는 작은 도랑을 만들며,크고 작은 바위가 쌓인 곳을 만나서는 벼루를 씻는 곳이 되고, 물오리를 기르는 곳이 되며, 부용이나 물풀을 심는 곳이 된다. 


석가산에서 뱀을 물리치고 안개를 일으키는 법

변경汴京의 간악艮嶽(변경에 있던 산으로 휘종 황제가 거대한 석가산을 조성한 곳)에는 원元나라 시절에 아라비아 사람이 상주하여 황실 안에서 석웅황石雄黃과 오감 수만 근을 가져다 석가산을 쌓았다. 그 이유는 석웅황을 바위산이나 길거리 등지에 쌓아놓으면 뱀과 독사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감석은 비가 내린 뒤 햇볕이 쪼일 때면, 습기가 위로 피어올라 이구가 엇물려 있다. 그래서 물고기와 소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물을 아낄 줄 모르고 물을 저장하는 방법도 아예 없다. 물과 더불어 땅을 다투기 때문에 큰 호수나 작은 연못이 천리 강산에 그 수를 헤아릴 만큼 많다. 그러나 가뭄을 한번 만나면 대지가 온통 황폐해진다. 그때에는 세 해 동안 땅을 소중히 가꿔 얻은 소득을 갖고도 한 해 가뭄에 잃은 손실을 메꾸지 못한다. 이는 심히 그릇된 일이다.

 

임원林園에 자리를 장만하여 집을 세우려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앞서서 산언덕이 주위를 휘감고 집 앞으로는 넓고 평탄하게 트인 땅을 선택하여지세地勢를 살펴야 한다. 다음에는 주변에 제방을 쌓거나 도랑을 파서 샘물을 길러낸다.


관설암

길이는 아홉 자이고, 넓이는 여덟 자이며, 높이는 여섯 자이다. 무게가 가벼운 나무로 살을 만들어 그위 삼면에 풀을 이용하여 종이를 발라서 베갯머리에 치는 병풍처럼 만든다. 상부는 살을 하나 가지고 덮고 하나 남은 앞면에는 이중 장막을 친다. 그 중간에 작은 평상 네 개를 놓을 공간을 만들어서 불을 피우거나 음식을 먹는 도구를 펼쳐놓을 수 있게 한다. 이것을 장소에 따라 옮기면서 바람을 등진 채 펼친다. 들판에 나가서 눈 속에 탁자를 놓고 있으면 융단 장막을 친 것에 비해 가볍고 앞이 훤히 트이기 때문에 경치를 조망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다른 용도로 사용해도 모두 어울리므로 꼭 눈을 구경하는 용도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서호西湖의 화방畵舫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아볼 길이 없고, 조채晁采의 남원南園에 있던 배는 지나치게 화려한 흠이 있다.
이제 나는 두 종류의 배를 만들고자 한다. 그중 하나는 호수에 띄우려고 한다. 고렴高濂이 말한 가벼운 배를 본뜬다. 배의 길이는 두 길 남짓 되고, 뱃머리의 폭은 네 자 가량 된다. 배에는 손님과 주인여섯 명, 노복 네 명이 탈 수 있다. 배의 중앙 갑판에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쑥대 자리로 위쪽에 장막을 친다. 다시 배 천막을 사용하여 처마까지 둘러치고, 천막 양 가장자리에는 주란硃欄을 설치한다. 난간 내부에는 포견布絹으로 장막을 만들어 동편 서편에서 들어오는 햇별을 가린다. 해가 나오지 않는 날에는 장막을 갈고리에 걸어서 높다랗게 걷어 올린다. 장막 내부의 중앙에는 탁자와 긴 의자를 놓는다. 배의 고물 갑판에는 남포로 긴 장막을 만들어서 양 가장자리의 처마 앞부분은 배 중앙 갑판 위의 기둥 끝에 묶고, 뒷부분은 못으로 박아 고정시킨 고물의 두 곳에 묶는다. 그렇게 만들어 노복들과 격리시킨다. 바람과 햇살에 다로茶爐의 연기가 피어오를 때면 홀연히 그림 속의 외로운 배 한 척과 같은 정경을 만들 것이다. 배는 되도록 낮고 평탄하게 만들 것이며, 무늬가 새겨진 두 개의 노를 사용하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버드나무 늘어선 제방과 갈대 우거진 물가에 둥실 띄우고 마름을 캐거나 물고기를 낚는 데 사용하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강나루에 띄우려고 한다. 왕여 겸汪汝謙의 불계원不繫園을 본뜨되 집을 나서서 방향을 바꾼 곳에 회랑을 만들고, 그 회랑을 타고 올라간 곳에 대를 세운다. 대 위에 휘장을 펼치놓는다. 꽃이 핀 아침이나 달이 떠오른 밤에 대에 오르면 빛 고운 무지개를 타고 창공에 오른 기분이 든다. 만약에 폭풍이 불어서 파도를 일으키고 비지志의 이름을 집터를 본다로 한 것은 집을 짓 기적 합한 장소에 대해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본다고 하였는가? 향배와 순역의 자리를 따지고 오행과 육기의 운수를 살피는, 오늘날의 술수가들이 하는 짓거리를 똑같이 하자는 것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그런 술수를 군자는 취하지 않는다.

 

현재 통용되는 상택경이 황제로부터 나왔다고는 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가탁한 데 지나지 않는다. 그 책에 나오는 술수는 묏자리를 따지는 것과 다름이 없다. 땅을 본다는 사람을 감 여가라 부르기도 하고 형 가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풍수가\라 부르는데 이 호칭이 오히려 실상에 가깝다.

 

그들의 술수는 대개 곽경순을 시조로 삼아 그 뒤를 쫓은 양구 빈 뇌파의 같은 무리들이 부연하였고, 온 세상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른다. 근래 들어 박학다식한 학자들이 글을 써서 그들의 허황됨을 적지 않게 분별하기는 했지만, 그 술수의 옳고 그름이 아직껏 제대로 판가름 나지 않았다. 오늘날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은 진실하고도 명확하여 아무런 하자가 없는 순정한 길을 선택하여 행동으로 옮긴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집이 지어지지 않을까 봐 걱정을 한다. 그렇건만 무엇 때문에 괴롭게 아직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나지 않은 길을 고지식하게 믿고 따라서 그런 짓거리에 푹 빠져 있을까? 집터를 선택하는 자는 이런 짓을 버리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무엇을 살펴보아야 한단 말인가?

2층 한옥구조물
2층 한옥